자신을 과대포장하기에 급급한 현시대에 오히려 자신의 지성을 숨긴채 아파트의 수위로 살아가는 노부인과 12살 먹은 천재 소녀간의 우정이라. 웬지 나이와 계급을 초월한 감동적인 우정과 세상과의 화해와 같은 감동적인 내용일거 같아서 여행중에 읽기 위해서 산 몇권중의 하나인데 정말 여행중에 다른 책을 다 읽어버려서 중간에 그만 읽고 싶었음에도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의 구성은 톨스토이와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문화 귀족이나 그 정체성을 끝까지 숨기는 과부이자 수위인 르네와(그런데 그렇게 정체성을 조작하면서 사람들이 그런 스테레오 타입으로 자신을 대하는거에는 분개한다. 왜지?) 수면제 따위로는 절대로 자살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세상의 이면을 이미 다 알아서 13살이 되면 죽겠다고 결심한 꼬마인 팔로마의 독백이 교차되면서 진행이 되는데 그 독백이라는게 정말 끔찍하다. 나이와 계급은 다르지만 내면으로는 정말 비슷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주변 인물들을 너무나 혐오하고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서슴치 않으며 자신들의 지적 우월성에 대한 오만과 허영이 정말로 불편하다. 물론 그게 부유층의 속물 근성을 조롱하고 숨겨진 유치함과 추함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두 주인공의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로 역겹기만 하다. 그들을 구원하는건 바로 톨스토이와 일본, 일본, 일본... 이부분이 또 실소를 자아내는데 일본 만화에는 삶에 대한 엄청난 진실이 들어 있으며 하이쿠와 일본 영화 그리고 일본음식과 일본식 인테리어는 그들에게 엄청난 동경과 이상향에 다름 아니다.(오즈의 아파트 화장실에서 화장실 휴지에 대한 단상은 정말 대단했다.) 그렇다고 무슨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쿨한 오리엔탈리즘 적인 아이콘으로 사용되는 그 이상은 아니다. 이러한 면은 책의 후반부에 두사람을 이어주는 일본인 (당연히도!!) 오즈의 등장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오즈는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고급 아파트에 사는 부자임에도 다른 부자들과는 다르다. 그야말로 부자에 친절하고 교양 넘치는 백마탄 왕자쯤 되려나? 당연히 백마탄 왕자와의 신데렐라 스토리까지 대책없이 이어지다가 결말은 마치 우리나라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신파적인 결말에 가까운 결말이라고나 할까?
두 지성인의 독백에 대한 내용이라 책 전반에 걸쳐 굉장히 어렵지만 그럴싸한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계속 보다보면 다분히 장식적이며 두 사람의 지적 허영심에 맞게 주로 다 사기다 라는 결론 (현상학, 자끄 라깡의 정신분석학, 콜베르의 논문등)으로 귀결되는걸 보는것도 씁쓸하다.
딱 한가지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미덕이라면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마누엘과 르네의 우정이 아닐까 싶다. 마누엘은 르네처럼 똑똑하진 않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삶에서 터득한 우아함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여인으로 마누엘과 르네의 진실한 우정은 그나마 이책에서 따듯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근데 이책 앞에 보니 영화로도 만든다는거 같은데 프랑스에서 만들면 한 두시간동안 예술과 문화에 대해서 주절주절 떠들다가 끝나는 영화가 나오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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